대문

본 블로그는 각국의 여러나라 신화를 중점적으로 다루는(물론 취미생활에 관한 글도 쓰긴 합니다.)블로그 입니다.
본 블로그의 글은 진짜 신화 학자가 아닌 단순한 대학원생 나부랭이가 쓰는 허접한 글이니 조금 이상해도 양해 바랍니다.^^


현재 중점적으로 다루는 신화-한국신화, 부두교, 중국신화


앞으로 조만간 다룰 신화-일본신화


완료된 신화-인도신화, 북유럽 신화, 켈트 신화
, 크툴루신화





p.s.-흥미와 재미를 주기위해 각종 개드립과 본인 나름대로의 해석이 다소 적혀있습니다.
괄호안의 글이나 취소선이 그어진 글은 알아서 걸러주시면 되겠습니다.

p.s.2-환빠는 꺼져주세요

by-신화를 공부하는 대학원생 나부랭이 이선생

분홍마스크 도시전설

[<모탈컴벳>의 밀리나의 모습으로 마스크 색깔을 포함한 몇몇 설정이 비슷하여 대신 사용하였습니다.]

일본의 입 찢는 여자가 한국으로 건너오면서 빨간마스크라는 이름으로 창씨개명을 당하고 그뒤 마스크의 색이 바뀌는 것으로 다양한 괴인들이 탄생했습니다. 그 마스크의 괴인들은 각자의 사연과 능력이 모두 다르며, 서로 우호적인 관계도 있고, 적대적인 관계도 있으며, 관계가 없는 경우도 있는 등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제 블로그에서는 대부분의 마스크들에 대해서 설명을 했었습니다. 그런데 다른 것들과 비교해서 잘 알려지지 않은 비주류 마스크 괴인 이야기 하나를 빠뜨려서 오늘 이야기 하고자 합니다. 그것은 바로 분홍마스크입니다.
(좋았어! 드디어 전대컬러 다 모였네!)

분홍마스크도 다른 마스크 괴인들처럼 끔찍한 외형을 하고 있습니다. 이름처럼 분홍색 마스크를 하고 있으며 단정한 코트 차림에 가죽신발을 신고 다닙니다. 땅바닥에 끌릴 정도로 긴 머리카락을 하고 있으며 차디찬 철갑 손을 하고 있어서 마스크를 벗기 전까지는 머리카락이 긴 아름다운 여성으로 보인다고 합니다. 하지만 마스크를 벗으면 마치 육식동물과 같은 흉측한 이빨이 나타난다고 합니다.
[끔찍한 이빨? 밀리나 맞네!]

이러한 끔찍한 외형과는 달리 착한 마스크라서 사람을 습격하지 않으며 오히려 주변에 나쁜 마스크가 있다면 쫓아버린다고 합니다. 그리고 나쁜 사람역시 발견하면 쫓아가서 마음음속에 들어간 뒤 나쁜 영혼을 없애고 깨끗하고 맑은 마음을 가진 사람으로 바꾸어버린다고 합니다. 그녀의 능력을 알기 쉽게 설명하자면 영화 <나이트메어>시리즈의 프레디 크루거와 비슷한 능력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단 프레디는 그 사람을 완전히 죽여 버리는 반면, 분홍마스크는 악한 부분만 죽이는 것입니다.
(뭐야? 그냥 슈퍼히어로잖아?)

분홍가수도 당연히 그 탄생비화가 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굉장히 아름다운 여가수가 한명 있었습니다. 너무나도 아람다웠기 때문에 동료나 선배 가수들에게 시기를 받았습니다. 마침내 열등감이 폭발한 가수들은 그녀가 소리 지르지 못하도록 분홍색 마스크를 씌운 다음 죽여 버리고 머리카락을 전부 잘라 흉한 모습으로 만들었습니다. 자신은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았는데 살해당했음은 물론이며 시체까지 흉하게 훼손당하는 치욕을 겪은 그녀는 그 원한으로 원귀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원귀가 된 후에도 그녀의 선한 천성은 어딜 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원귀가 되면서 얻은 힘을 사람들을 돕는 것을 위해 사용하였다고 합니다.
[원귀가 저러면 저걸 윈귀라고 할 수 있나?]

그냥 빨간 마스크의 인기에 힘입어 나타난 수많은 아종들 중 하나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거기다 이야기 구조역시 다른 마스크 이야기에 비해서 굉장히 빈약합니다. 분홍마스크가 인간의 심상세계로 들어가는 능력을 얻을만한 복선 같은 것도 전혀 없었고, 머리카락을 잘려 흉한 모습이 되어 죽었는데 나타나는 모습은 머리카락이 땅에 끌릴 정도로 길며, 짐승의 이빨을 하고 있는 입 역시 어떻게 생겼는지 전혀 나오지 않습니다. 그냥 빨간 마스크 이야기가 퍼질 당시 이런 것도 있었구나 하고 넘어가시면 될 것입니다.
[어떤 요소가 큰 인기를 끌면 수많은 짝퉁이 쏟어져 나오는데 그 중 하나라고 보면 될겁니다. 그렇다고 뭔가 특별한 것도 없고....] 
여담으로 분홍마스크는 사람을 습격하지 않으며, 나쁜 마스크 괴인을 쫓아내고, 나쁜 사람을 정화하고 다니는 것으로 설정이 된 이유는 이 이야기를 만들고 전승한 사람이 마스크 괴인들을 무서워 한 어린아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마스크 괴인이 무섭기 때문에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만든 안티태제가 바로 분홍마스크 인 것이죠.(검은마스크도 복수를 도와주며 나쁜 마스크 괴인들을 처치하지만 그 대가로 몸을 빼앗아 가버리니…….)

한국사 최고의 정복군주-고담덕 영웅전설

이름 : 고담덕
칭호 : 광개토대왕(廣開土大王), 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國岡上廣開土境平安好太王), 국강상광개토지호태왕(國岡上廣開土地好太王), 국강상광개토지호태성왕(國崗上廣開土地好太聖王)
지역 : 대한민국(고구려)
출전 : <삼국사기>, <광대토대왕릉비>

오늘 이야기 할 영웅은 한국역사상 최고의 정복군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광개토대왕입니다. 한글을 만드신 엄청난 업적을 세우신 세종대왕과 더불어 대왕이라는 호칭이 붙어 있는 것만 봐도 그가 다른 왕들과는 격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의 완전한 호칭은 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國罡上廣開土境平安好太王)이며, 생존 시의 칭호는 영락대왕이었다고 하지만 여기서는 가장 익숙한 명칭인 광개토대왕으로 통일하겠습니다.

광개토대왕에 대한 설명을 하기 전에 그가 즉위할 때 고구려의 상황을 먼저 알아봐야할 필요가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고구려는 항상 방대한 영토누리고 있었다고 막연히 생각하곤 하는데 사실 광대토대왕이 즉위할 시기에 고구려는 사실 상태가 그리 좋지 않았습니다. 할아버지인 고국원왕시기에 전성기에 서쪽의 전연과 전성기를 맞이한 백제에게 많은 영토를 잃었을 뿐만이 아니라 평양까지 밀고 들어온 백제의 근초고왕을 막기 위해 직접 평양성 전투에 참가했다 전사하는 바람에 고구려는 거의 망하기 직전까지 몰리게 됩니다.
[광개토대왕 즉위 당시 고구려의 상황]
이후 즉위한 소수림왕이 정치적으로 나라를 안정시키고 망해가는 나라를 어느 정도 일으켜 세워 기반을 닦긴 했지만 근초고왕의 아들인 근구수왕 역시 아버지에 꿀리지 않는 능력자라 영토 확장을 하지는 못했습니다. 이후 소수림왕의 동생이며 광개토대왕의 아버지인 고국양왕역시 후연을 습격하여 요동을 정벌하는 등 공격적으로 영토확장을 하였지만 후연의 반격으로 요동을 다시 빼앗겨 결국 영토를 전혀 늘리지 못하고 기반만 닦고 끝났을 뿐이었습니다. 즉 기반을 어느 정도 닦긴 했지만 영토는 거의 확장하지 못한 상황에 서쪽은 후연이 버티고 있으며 남쪽으로는 백제가 여전히 패권을 쥐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거기다 서북으로는 유목민족들이, 동북으로는 동부여가 자리를 잡고 있어 조금도 방심할 수 없는 위태로운 상황이었습니다. 이런 고구려의 단번에 강대국의 반열에 올려 둔 것이 바로 광개토대왕입니다.

392년 광개토대왕은 17세라는 어린나이에 왕위에 올랐습니다. 보통 어린나이에 왕위에 오르면 힘있는 귀족에 의해 허수아비가 될 위험이 있는데 광개토대왕은 즉시 사병제도를 철폐하고 군사력을 통일시켰습니다.(물론 이는 귀족의 힘을 꺾기 위한 것이 아니라 전쟁을 준비하기 위한 것으로 귀족들도 하도 주변국들에게 쪼이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아마 큰 반발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즉위한지 겨우 2달이 지난 392년 7월의 가을 직접 4만의 군사를 이끌고 벡제의 북쪽 변경을 공격하여 석현성(石峴城)등 10여 성과 한강, 그리고 한강주변의 부락들을 함락하였습니다. 당시 백제의 왕인 진사왕은 광개토대왕이 군사를 부리는 것에 능하다는 말들 들고 두려워서 공격하지 못했습니다.
[당시 백제는 반도의 패권을 쥐고 있었다고 자부할 정도의 넓은 영토와 국력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패배는 뭔가의 실수라 생각하고 계속 공격을 감행하지만.....(묵념)]
나름 반도의 패권을 쥐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던 백제는 8월에 자신들의 영토를 되찾기 위해 고구려의 남쪽 변경을 공격하지만 장수에게 명하여 간단히 막아버렸다고 합니다.
그리고 같은 년 9월에는 북쪽의 거란을 정벌하여 소수림왕 시절 거란의 침공으로 끌려간 고구려의 백성 1만여명을 되찾을 뿐만이 아니라 거란족 500명을 포로로 잡아왔다고 합니다.
거란에게 승리한 고구려는 10월에 다시 백제에 공격을 감행했습니다. 백제 북방위 요충지인 관미성(關彌城)을 공격했습니다. 그런데 관미성은 관미성은 사면이 가파르고 바닷물이 에워싸고 있는 천해의 요새라 함락이 쉽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광개토대왕은 군사를 일곱 길로 나누어 20일에 걸친 포위 끝에 함락하였습니다. 이해 12월 진사왕이 행궁에서 사망하고 아신왕이 즉위합니다. 백제는 393년에는 관미성을, 394년에는 수곡성(水谷城)을 공격하였으나 격퇴하였고 오히려 백제의 침략을 막기 위해 남쪽변경에 7개의 성을 쌓았습니다.(이는 고구려가 여전히 백제를 경계하고 있었다는 뜻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광개토대왕은 백제를 상대로 전승행진을 하고 있었음에도 이렇게 철저하게 대비하는 것을 보면 승리에 취해 방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비려 정벌 당시 건넌 것으로 추정되는 시라무렌강]
광개토대왕이 즉위한지 5년째가 되는 395년 유목민족인 비려(碑麗)가 백성들을 잡아가서 돌려보내지 않자 몸소 군대를 끌고 갑니다.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참가하는 것이 바로 고구려의 무적의 철갑기병이라고 할 수 있는 개마무사들입니다.
(개마무사들이 이때 처음 등장한 것은 아니지만 이전에는 말까지 판금갑옷으로 둘둘 해야 하기 때문에 막대한 비용문제로 많이 편성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백제와 거란으로부터 계속되는 승리를 거두어들이며 얻은 자본을 기반으로 더욱 발달된 개마무사들을 편성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광개토대왕이 이끄는 고구려의 병사들은 3개의 부락과, 6~700여개의 영(營 : 유목민들의 마을 단위)을 격파하여 소와 말, 그리고 양 등의 가축을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노획해 왔을 뿐만이 아니라 양평도를 지나 국경을 두루 살피고, 사냥까지 하고 돌아오는 여유를 보여주었습니다.(이당시 사냥은 군사점검이기도 했으니 그냥 놀고 온 것이라 생각하면 안됩니다.)
영락 6년 그동안 계속 전투를 치러왔으며, 할아버지의 원수인 백제를 완전히 박살을 내버립니다. 광개토대왕은 몸소 수군을 이끌고 백제를 토벌하였습니다.
[고구려 수군의 백제 침공 경로]
영팔성, 구모로성, 각모로성, 간저리성, □□성, 각미성, 모로성, 미사성, □사조성, 아단성, 고리성, □리성, 잡진성, 오리성, 구모성, 고모야라성, 혈□□□□성, □이야라성, 전성, 어리성, □□성, 두노성, 비□□리성, 미추성, 야리성, 태산한성, 소가성, 돈발성, □□□성, 루매성, 산나성, 나단성, 세성, 모루성, 우루성, 소회성, 연루성, 석지리성, 암문□성, 임성, □□□□□□□리성, 취추성, □발성, 고모루성, 윤노성, 관노성, 삼양성, 증□성, □□노성, 구천성 등을 공격하여 싸우는 족족 승리하여 전부 함락하였고 백제의 수도인 위례성까지 다다르게 됩니다. 하지만 아신왕은 아직도 백제가 반도의 패권을 쥐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 것인지, 아니면 자존심 때문이었는지 패배를 인정하고 않고 군대를 성 밖으로 보내어 응전하였습니다. 이에 광개토대왕은 분노하여 한간을 건너 군사를 보내 성을 공격하였고 고구려 군에 포위당한 아신왕은 결국 포로 천명과 세포(細布 : 가는실로 짠 고급베) 천 필을 바치며 항복하고 스스로 “이제부터 영원토록 신하가 되겠습니다.”라고 맹세하자 광개토대왕은 앞의 잘못은 용서하였다고 합니다. 이때 58개의 성과 7백 개의 촌을 함락하고, 아신왕의 동생과 대신 10명을 데리고 도성으로 돌아갔다고 합니다.
[추진력을 얻고도 계속 연패했다.]
이것으로 백제는 고구려의 신하나라가 되긴 하지만 아신왕이 무릎을 꿇은 것은 추진력을 얻기 위한 것이었을 뿐, 이후로도 계속 고구려를 공격하지만 공격하는 족족 패배해 버립니다. 만약 고구려가 후연과 우호관계에 있어서 전쟁을 하지 않았다면 멸망하는 건 후연이 아니라 백제였을지도 모르는 일이죠.
영락8년이 되는 398년 광개토대왕은 고구려 동북방의 변방으로 한 부대의 군사를 보내 숙신족을 순찰하도록 했으며 이때 막사라성, 가태라곡의 남녀 3백여 명을 잡아왔고 이 이후로 숙신은 고구려에 조공을 바치고 내부의 일을 보고하고, 고구려의 명을 받기로 하였습니다.
영락 9년 399년, 백제의 아신왕이 다시 한 번 군사를 모아 고구려를 치려고 합니다. 하지만 백제는 고구려를 상대로 패전의 연속이었기 때문에 백성들이 징집을 피해 신라나 고구려 등 다른 나라로 달아나버려서 군사력이 모이지 않았습니다. 고구려에 복수할 힘을 가지기 위해서는 먼저 몸집을 불려 힘을 키워야 한다고 생각한 백제는 먼저 왜에 태자 전지를 보내어 동맹을 맺었고 가야역시 백제의 계획에 가담하여 백제, 가야, 왜의 연합군이 신라를 공격합니다.
[상당히 막강한 연합이긴 했다. 상대가 좋지 않았을 뿐....]
연합군을 막지 못한 신라는 고구려로 사신을 보내 “왜인이 신라의 국경에 들어와 성지(城池)를 부수고 신라의 왕을 왜의 백성으로 삼으려고 하니 왕께 귀의해 구원을 청합니다.” 라고 말하며 구원을 요청하였습니다. 이대로 신라를 도우러 가면 후연에게 빈집털이를 당할 위험성이 있었기에 광개토대왕은 후연으로 사신을 보내어 조공을 바치는 것으로 시간을 벌려고 하지만 후연은 조공까지 받았음에도 사신이 무례하다는 꼬투리를 잡아 모용희를 선봉으로 하여 빈집털이를 하였습니다.
신성과 남소성을 무너뜨리고 700리에 달하는 땅을 빼앗겨 요동 방어선이 구멍이 나버렸고 전병력을 북쪽에 집중시켜야 될 상황이 되어버렸습니다.(아직은 신라에 병력을 보내지 않았지만 백제와 유목민 견제 등 병사들이 여기저기 퍼져 있었으며 당시 광개토대왕이 머무르고 있던 평양에 병력이 집중되어 있었을 것이니 빈집털이가 맞다.) 하지만 하늘이 도운건지 후연에서 반란이 일어나고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주춤하는 사이에 연합군을 쓸어버리기로 결정하고 영락 10년에 5만의 대군을 신라로 보냈습니다.
여기서 고구려군의 진가가 드러나는데 고구려의 5만의 군사는 남거성(男居城)부터 연합군을 처치하며 신라성(경주)까지 이르렀고 이 기세에 밀린 20만의 연합군은 임나가야의 종발성까지 퇴각하였으나 고구려군은 지체 없이 연합군을 추격하여 항복을 받아내었습니다. 이 전쟁으로 한반도에는 많은 변화가 생깁니다.

[신라 유적지에서 나온 고구려의 그릇으로 이 이후로도 고구려군이 일부 주둔한 것으로 보입니다.]
먼저 신라는 고구려에 조공하는 보호국이 되지만 고구려에게 내정 간섭 수준의 정치적 영향력을 받게 되었습니다. 대표적인 것을 꼽자면 박, 석, 김씨가 돌아가면서 신라의 왕이 되었는데 광개토대왕이 헷갈린다고 신라의 왕을 김씨로 통일해버렸으며, 조공을 바칠때는 왕이 직접 찾아갈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가야연맹은 원래 금관가야가 맹주로 가야연합을 주도하고 있었는데 고구려가 연합군을 쓸어버릴 때 큰 타격을 입어 금관가야 중심인 가야연명은 붕괴하고 대가야중심의 후기 가야연맹이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연합군을 박살낸 광개토대왕은 다시 북으로 돌아와 빈집털이를 한 후연에게 반격을 시작합니다.
후연과의 싸움은 상당히 엎치락뒤치락 하는데 먼저 402년 1월에 후연이 서쪽 요서의 북위를 몰아내기위해 군사를 서쪽에 집중시키자 광개토대왕은 5월에 숙군성(宿軍城)을 빈집털이 하여 그곳에 주둔하고 있던 평주 자사 모용귀가 성을 버리고 달아나게 했습니다.
그 후 404년에도 후연을 공격하였으며, 비슷한 시기에 연군(燕郡)까지 공격하여 100여명을 살육하고 약탈하였다고 합니다.
한편 연합이 박살났음에도 백제와 왜는 포기하지 않고 영략 14년인 404년 대방(帶方, 황해도) 연안을 침입하였습니다. 백제와 왜의 연합군은 석성(石城)을 공격하고 연선(連船)을 동원하였으나 광개토대왕이 몸소 군사를 이끌고 나가 선봉이 서로 맞서게 되었습니다. 광개토대왕은 적의 길을 끊고 막아 좌우에서 공격하니 백제와 왜의 연합군의 무수히 많은 병사들은 참살당하여 궤멸해버렸다고 합니다.
이것을 마지막으로 백제역시 계속되는 전쟁으로 국력을 많이 소모함과 동시에 이어지는 패전의 연속에 불만을 가진 세력들로 인해 한바탕 내분을 겪게 되면서 최종적으로는 왜, 중국, 신라와의 외교에 전념하게 됩니다. 이것으로 광개토대왕은 한반도의 패권을 완전히 장악하게 된 것입니다.

[다시 빈집털이를 하지만 이번에는 뭔가 실수를 한 것인지 요동성을 함락하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후연에게는 광개토대왕이 왜군을 치러 내려갔을 때가 기회라 생각하고 다시 요동성에 빈집털이를 강행하여 거의 함락직전까지 몰아붙였지만 결국 함락은 하지 못했습니다. 이어서 406년 1월 다시 목저성(木抵城)에 기습공격을 강행하였으나 패배하고 말았습니다. 요동성과 목저성 수비에 성공한 고구려는 요동장악을 확고히 하였고 이때 광개토대왕이 수비위주로 움직인 이유는 고구려에 가뭄이 들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봐서 출전을 하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즉 전쟁만 잘하는 것이 아니라 나라의 정세(情勢)를 읽는 것 역시 출중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407년에는 어디론가 보병과 기병 5만을 출병시켜 어딘가를 공격했고 광개토대왕은 사방합전(四方合戰)하여 모조리 살상하여 분쇄하였다고 합니다. 노획한 갑옷인 1만여 벌이며, 그 밖에 군수물자는 그 수를 해아릴 수 없이 많았으며, 돌아오는 길에 사구성, 루성, □주성(□住城), □성, □□□□□□성을 격파하였다고 합니다. 이 전투는 <광개토대왕릉비>가 훼손되어 어딘지는 알 수 없어서 학계에서는 후연이나 백제, 왜 등 의견이 분분합니다. 그러나 당시 백제나 왜는 이정도의 군수물자와 병사들을 편성할 여력이 되지 않았으며 이 이후 후연이 망하는 것을 봐서는 이때 결적으로 패배한 것이 후연의 멸망으로 이어진 것이라 짐작됩니다.
결국 후연에서는 풍발이 반란을 일으켜 모용희를 살해하고 모용운을 추대했습니다. 모용운은 고구려계인 고운(高雲)으로 모용보의 양자였는데 왕위에 오르자 다시 성을 고씨로 바꾸고 후연은 북연으로 바뀌게 됩니다. 그리고 408년 광개토대왕은 북연으로 사신을 보내 우호관계를 맺음으로써 서쪽 국경을 안정시켰다고 합니다. 이것으로 후연과의 싸움도 끝나게 됩니다.
영락 20년인 410년에는 동부여를 정벌하러 갑니다. 동부여는 옛날 추모왕(동명성왕)의 속민이었는데, 중도에 배반하여 조공을 하지 않았습니다.(고국원왕 때 나라가 거의 망하기 직전까지 갔으니 그럴 수밖에…….) 이에 광개토대왕은 직접 군대를 이끌고 여성(餘城, 동부여의 도성)에 이르자, 동부여는 나라 전체가 두려워하며 항복하였다고 합니다. 왕이 항복을 수락하고 도성으로 돌아갔습니다. 대체로 헤아려 보니 공파(攻破)한 성(城)이 64개, 촌(村)이 1천400개였다고 합니다.(학계에서 이 기록은 광개토대왕이 평생 동안 점령한 모든 수의 성과 마을이라는 설도 있고 그냥 동부여를 정벌하면서 함락한 성과 촌락이라는 의견도 있습니다. 그런데 즉위하자마자 백제에게 성 10여개를 빼앗고 이후 다시 58 성을 함락하였다고 했으니 이것만 68개다. 그런데 동부여가 백제만큼 큰 나라도 나이었는데 저만한 수의 성이 있었다는 것도 의문이긴 하다.)
동부여를 점령하고 2~3년 뒤에 서거하였으니 그야말로 즉위와 동시에 죽을 때 까지 계속해서 전장을 누비며 나라밖으로 세력을 넓힌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나라 안도 잘 관리하는 완벽초인적인 면모를 보여주며 계속 전쟁을 하러 나갔는데 언제 결혼한 건지 아들까지 두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평양을 크게 중시하여 393년에는 9개의 절을 평양에 창건하고 409년에는 나라 동쪽에 독산성(禿山城)등 6개의 성을 쌓았습니다. 그리고 광개토대왕릉비에는 ‘나라가 부강하고 백성이 편안하였으며 오곡이 풍성하게 익었다.’라며 칭송하는 기록이 있는 것을 봐서 민심역시 좋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나라가 부강하면 민심이 안정되는 사례는 굉장히 많은데 광개토대왕은 가는 족족 승리만 했으니 민심도 나빴을 리가 없습니다.(반대되는 사례로 이시기 백재는 연패가 계속 이어져서 백성들이 징병을 피하기 위해 외국으로 도망쳤다.)

[이순신 장군님도 36전 36승의 신화나 전설같은 전적을 세우셨는데 광개토대왕님 역시 직접 군을 끌고 간 곳에서는 평생동안 단 한번의 패배도 하지 않았습니다.(후연에 빈집털이 당한 것이 유일한 결점)]
이순신 장군님이 임진왜란때 단 한 번의 해전에서도 패배하지 않고 전승하여 외국인들이 깜짝 놀라며 이야기속의 영웅이 아니냐고 물어보았다는 것을 다들 잘 아실 겁니다. 그런데 광개토대왕님 역시 단 한 번의 패배도 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후연에게 빈집털이를 당해 땅을 잠시 빼앗기기도 하는데 이건 말 그대로 빈집털이라 당한 것이고 광개토대왕이 직접 출전한 곳에서는 단 한 번의 패배도 하지 않았으며 영락 6년에 백제를 습격할 때는 직접 수군을 이끌었다고 되어 있는 것을 봐서 육군뿐만이 아니라 해군까지 잘 운용할 수 있는 뛰어난 용병술을 보유하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분이라 다고 칭송하는 글이 되어 불편하신 분이 있으실 지도 모르겠지만 과장이나 거짓은 한 줄도 쓰지 않았습니다.
[장수왕 414년에 능비를 세우고 유언에 따라 수묘인을 두어 왕릉을 관리하게 하였습니다.]

인어의 종류 옵션

[서울 한강공원에 있는 인어의 동상]

지역 : 대한민국
출전 : <자산어보>
추가되는 곳 : 신지께

전 저번에 한국에 인어가 있다며 몇가지 이야기를 거문도의 신지께와 함께 설명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조선의 해양사전인 <자산어보>에 인어에 대한 정보가 있을 뿐만이 아니라 인어의 종류과 종류에 따른 각각의 특징까지 모두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자산어보>에 기록된 인어는 총 다섯 종류가 있는데 그것은 제어(䱱魚), 예어(鯢魚), 역어(魚役魚), 교인(鮫人), 여인인어(女人人魚)입니다. 이 다섯 종류의 인어들을 하나하나 설명하자면 이는 다음과 같습니다.

[제어의 모습을 그린 상상화]
1. 제어(䱱魚) : 제어에 대한 기록은 <산해경>에도 기록되어 있으며 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휴수(休水)는 북쪽 낙(雒)지역으로 흘러가는데 그곳에는 제어가 많다. 제어의 형상은 겨울잠 자는 원숭이와 같고 다리가 길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시진이라는 사람에 의하면 강이나 호수에 살며 형색이 점어(鮎魚)나 외어(鮠魚) 같은 모습이라고 하며, 아가미가 있다는 묘사를 보면 일반적으로 인어 하면 연상되는 모습은 아닌 것으로 생각됩니다. 하지만 인어라고 불리는 이유는 아가미에서 나는 소리가 아이의 울음소리와 같아서 그런 것이라고 합니다.

[<산해경>에 나오는 인어의 모습으로 다리가 넷이라는 점이 예어와 동일합니다.]
2. 예어(鯢魚) : 예어는 점어와 같지만 다리가 네 개하고 합니다. 앞모습은 원숭이와 비슷하고, 뒷모습은 개와 비슷하다고 하니 예어 역시 일반적으로 떠올리는 인어의 모습과는 많이 다릅니다. 특히 예어의 예(鯢)자가 도롱뇽이라는 뜻이라는 것을 보면 인간과는 다른 모습이리라 생각합니다. 이 역시 소리가 어린아이 울음소리 같아서 인어라고 불린다고 합니다. <본초>에 대한 도흥경의 주석에 따르면 예어의 기름에 불을 붙이면 기름이 잘 없어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모양과 소리가 모두 제어와 같다고 하니 생김새는 제어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단 예어는 나무에 오를 수 있으며, 제어는 강이나 호수에 사는 반면 예어는 시내에서 살기 때문에 따로 분류하였다고 합니다.

[눈썹, 귀, 입, 코, 손톱, 머리 등 사람의 신체구조를 전부 가지도 있으며 성교하는 모습이 사람과 다를 것이 없다는 것으 봐서 하반신도 물고기와는 다소 차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3. 역어(魚役魚) : 역어는 바다의 인어로 눈썹, 귀, 입, 코, 손톱, 머리를 모두 갖추고 있으며 껍질과 살이 옥처럼 희며, 비늘이 없고 잔털이 있다고 합니다. 오색의 머리카락은 말총과 같고 그 길이는 5~6척(150~180cm)몸통의 길이 역시 5~6척이라고 합니다. 바다 가까이에 사는 사람들은 잡아서 못이나 늪에서 기른다고 하며, 암수가 성교하는 모습은 사람과 다를 것이 없다고 합니다. 대나무를 잘 오르거나, 아이의 울음소리를 낸다는 점이 제어나 예어와 비슷하지만, 생긴 모습이 다르기 때문에 따로 분류하였다고 합니다.

[중국에서 그려진 교인의 모습으로 비단을 짜는 교인 답게 비단을 두르고 있습니다 하지만 교인은 때때로 인간 마을로 가서 장사를 한다고 하니 하체가 물고기는 아닐 것이라 생각합니다.]  
4. 교인(鮫人) : <술이기>에 따르면 교인은 물고기처럼 물에 살면서 비단 짜기를 그만두지 않았다고 합니다. 눈에서 눈물을 흘리기도 하는데 그 눈물은 구슬이 된다고 했습니다. 교인이 짠 비단은 교초(鮫綃) 혹은 용사(龍紗)라고 불리며 그 가격이 100여 금이나 되며 이것으로 옷을 만들면 물에 들어가도 젖지 않는다고 합니다. <박물지>에 따르면 교인은 물고기처럼 물에서 살면서 비단을 짜며, 가끔 물에서 나와 인가에 기거하며 생사(生絲 : 삶지 않은 명주실)을 팔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떠날 때는 자신을 기거하게 해준 주인집의 그릇을 찾아다 눈물을 흘려 구슬을 채워서 주인에게 주었다고 합니다.

[마지막 인어는 사람들이 인어 하면 흔히 떠올리는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5.여인인어(女人人魚) : <계신록>에 따르면 ‘사중옥이라는 자가 여인이 물에서 나타났다 사라졌다 하는 모습을 보았는데, 그 여인의 허리 이하는 모두 물고기였으니 이는 곧 인어다.’라고 했습니다. 즉 우리가 인어 하면 흔히 떠올리는 일반적인 모습의 인어일 것입니다. 여인인어에 대한 기록은 <술이기>에도 기록되어 있는데 ‘사도라는 자가 고려에 사신으로 가면서 바다에서 여인 하나를 보았는데, 홍색 치마를 입고 양쪽 옷소매를 걷어 올렸으며 비녀를 꽃은 모양이 어수선했다. 아가미 뒤에 홍색 가슴지느러미가 조금 나 있었다. 사도가 이 여인을 물속에 부축해서 놓아 주도록 명하자, 여인이 두 손을 모아 절하고서 차마 헤어지지 못해 하다가 사라졌으니, 이는 곧 인어다.’ 라고 합니다.
제어, 예어, 역어, 교어 이 네 가지에는 여인과 비슷하다는 설이 따로 없어 따로 분류하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서남해에는 사람과 유사는 두 종의 물고기가 있는데 그중 하나는 상광어로 형상이 사람과 비슷하면서 젖이 두 개 있으니 이는 곧 본초서 에서 말한 해돈어입니다.
[해돈어는 상괭이라고 불리는 한국의 토종고래로 지금은 멸종위기종입니다.]

또 다른 하나는 옥붕어로 길이가 8척 가량이고, 몸은 사람과 같고, 머리는 어린아이와 같으며, 수염과 머리털이 더부룩하게 늘어져 있는데 하체에는 암수의 구별이 있어서 사람 남녀의 그것과 매우 비슷하다고 합니다. 뱃사람들은 이 물고기를 아주 꺼려ㄹ해서 어쩌다가 그물에 들어오기라도 하면 불길하다고 여겨 버린다고 합니다. 이것이 틀림없이 사도가 본 물고기라고 합니다.

이것이 <자산어보>에 나오는 인어에 대한 설명으로 생각 했던 것 보다 다양한 모습과 특징들이 발견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자산어보>는 우리나라 최초의 해양생물 백과사전인데 그 곳에 인어가 기록되어 있는 것을 보면 적어도 조선시대까지는 사람들이 인어가 실제로 살았다고 생각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동양판타지에 인어를 등장시킬 때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는 자료라고 생각하며 동시에 서양의 인어와 차별화를 두는 것도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신기한 비단을 짜며 눈물은 구슬이 되고 가끔씩 인간 마을에 와서 실을 팔고 가는 교인은 서양의 인어와 완전히 차이가 나는 독특한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평창 올림픽 개막식을 보고 왔습니다! 잡담

평창 올림픽 개막식을 보고 왔습니다! 기대했던 것 보다 훨씬 더 많은 볼거리를 제공하여서 굉장히 즐겁게 볼 수 있었습니다. 그중에서 특히 제 눈길을 끈 것이 있는데요...
바로 이 녀석.... 전 보자 마자 반가움에 환호성을 질렀습니다. 제 블로그에서 인두조수라는 이름으로 소개한 우리나라의 전통 영물이니까요.
[최상단 부터 고구려, 백제, 신라에서 그려진 인면조의 모습]

특히 인두조수는 신의 사자로 평화로울 때 나타난다는 말도 있어서 남북이 하나되는 평화로운 올림픽이 되자는 취지로도 딱 적당하다고 생각하며 혼자서 높은 점수를 주며 만족하고 있었습니다. 네 저는 이때는 모르고 있었죠....이런거 알고 있는 덕후는 나 뿐이고 다른 일반인들은 저녀석이 뭔지도 모른다는 것을요....
네 그리고 역시 아니다 다를까 인면조는 많은사람에게 강력한 인상을 남겼고(물론 나와는 다른방향이다.) 평창 앞 의문의 동상과 함께 인터넷에서 일종의 밈이 되어 '유교 드래곤'이라는 조롱을 받고 있더군요....
거기다 개막식 그 자체를 까는 일부 사람들은 하나 같이 근본을 알 수 없는 것 뿐이라는 막말까지 하더군요.....삼국시대부터 전해져 오던 것이 고퀄리티로 춤을 추고 있는데도 말입니다.
(물론 IT강국 드립과 함께 미래 산업 영상 나오는건 나도 어리둥절하고 무슨 기술박람회 보는 기분 같긴 했음. 하지만 그덕에 볼거리가 늘었으니 긍정적이라 생각합니다.) 
솔직히 고증도 진짜 잘했고 퀄리티도 좋았는데 지명도가 낮아서 이렇게 되어버린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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